가을이 와서노랗게 물들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벽장에 노란 삼베 수의를 모셔두고가끔씩 들여다보는어머니의 수줍은 웃음처럼그것이 두려움인지 설렘인지쓸쓸함인지 흐뭇함인지 알 수 없지만가을이 와서 노랗게 물들 수 있다는 건 찬란한 일입니다.얼굴만 한번 보고시집갈 날을 기다리는 새색시가신랑의 얼굴을 그리고 또 그려보며새 삶을 익히듯어머니는 옛 추억을 맞춤법 틀리는 글씨로 적어삼베 수의 밑에 묻어두기도 하다가죽음이 신랑처럼 그리워지는 듯도 하는 저녁노란 삼베 수의를 펼쳐신부의 예복처럼 몸에 대어보기도 합니다.가을이 와서 노랗게 물든다는 건물들지도 못하고 비명처럼 떨어져 구르다찾아와 누운 나에게그렇게밖에 살 수 없느냐는 준엄한 꾸짖음입니다.가을이 와도사람들에겐 그리움이 없습니다.그리움이 없는 사람들이비명처럼 도시의 빈 거리를 서성이다이 저녁에 경악하는 얼굴로 잠이 듭니다.아무도 만나지 못한 계절이창밖 어둠 속에서좀처럼 잠들지 못한 채 홀로 서성이고가을이 와서 노랗게 물들 수 있다는 건참으로 찬란한 일입니다.(은행나무-詩. 김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