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3호소재지 :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이 집을 처음 지은 사람은 김중안(金重安, 1639~1705)이라고 하며 건축연대는 1700년 경 전후로 추측된다.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이 이 집에서 태어나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동야는 조선 영조(英祖)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어전(御前)의 면접시험에서 답안(答案)으로「孔子家語」에 나오는「魯人東埜畢事」를 인용하였는데, 영조(英祖)가 “동야 선달(先達)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면서 시권(試券)을 외우라고 명(命)한 것을 기념하
중요민속자료 제89호소재지 :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37(풍일로 181) 이 건물은 겸암(謙菴) 류운용(柳雲龍, 1539~1601)이 명종(明宗) 22년(1567)에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을 위해 지은 것이다. 겸암정(謙菴亭) 현판은 그의 스승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써준 것으로, 겸암이 이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정자 누마루에 앉으면 절벽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과 건너편 하회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윽한 정취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 류성룡의 형인 그는 벼슬길을 멀리하고 자연 속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7호소재지 :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수곡용계로1698) 이 건물은 회헌(檜軒) 류의손(柳義孫, 1398~1450)과 기봉(岐峯) 류복기(柳復起. 1555~1617)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제향(祭享)하는 곳이다.기봉이 후손들의 수학(修學)과 휴식을 위해 광해군(光海君) 7년(1780)에 지었다. 정조(正祖) 4년(1780)에 별묘를 지어 봄․가을로 향사를 지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당(書堂)으로 세웠던 것을 나중에 후손들이 여기서 향사를 지냈다. 회헌은 조선 초기 세종(世宗) 때 학자로 이조참판(吏曹參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73호소재지 :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묵계하리길42) 이 건물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조선 연산군(燕山君) 6년(1500)에 지은 정자이다. 김계행은 문신으로 청백리에 뽑혔던 분이다. 안동 소산에서 태어나 성균관에 입학하여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과 교유하였다. 50세가 넘어 과거에 급제한 선생은 대사성(大司成), 대사간(大司諫), 홍문관(弘文館) 부제학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의 폭정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이 정자를 짓고 “쌍청헌(雙淸軒)”이라